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마가복음 12장 35-37절『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성경은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과 부활 승천하시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The LORD)이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의 영으로 인해, 그리스도(The Lord)를 예정하셔서 스스로 흙속에 들어가서 첫사람이 되었고, 다시 그를 잠들게하여(죽음:십자가의 예표) 남자와 여자로 분리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육의 몸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 범죄한 천사의 영을 태어나는 인간들의 몸에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정하신 대로, 스스로 마지막 사람 아담(부활의 예표)으로 태어나, 회개하는 자들에게 영의 몸(부활:그리스도의 옷)을 주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The Lord)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셨다. 셀렘왕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자의 모습으로, 상수리 나무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시는 자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누가복음 18장 1-8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에서”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잠깐 자는 것과 같다”라고 했으며,”우리 인생이 칠십이요 팔십이라도 일식간에 날라간”라고도 했다. 그런데 인간들은 마음 속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다. ”심판을 대비하라”는 말인데,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듯하다.『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 앞에 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니, 이 말씀을『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하는 기도로』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은『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서 말하고 있다.『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

믿음과 구원

  믿음과 구원   믿음은 두가지가 있다.   자기가 믿는 믿음 ( 신념 ) 과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인데 , 자기가 믿는 믿음은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이고 ,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다 . 구원은 신도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받을 때 이루어진다 . 그런데 , 신도가 이런 믿음을 받지도 않았는데, 이런 믿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이런 믿음을 받았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 바로 사탄이다 .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자 말자 , 성령이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했다 .  사탄의 시험은 세가지인데 , 첫째는 복음과 율법을 섞도록 하는 것이다 . 두번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인본주의 신앙을 나타낸다 . 신도가 하나님께 복을 빌고 그 복을 들어주면 자신의 신앙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 그런데 ,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 세번째는 영지주의이다 . 신도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데 ,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사탄의 시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해보라는 말이다 . 자신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율법주의 , 인본주의 , 영지주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 , 이는 자기가 믿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율법주의는 날마다 자신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는 자가 대표적이다 . 인본주의는 세상의 복을 비는 기복주의가 대표적이다 . 그래서 신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 영지주의는 영은 육체 속에 갇혀있지만 , 근본적으로 영은 깨끗하므로 신의 성품을 발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도가 이 세가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모두 자기를...

겨자씨 비유

  겨자씨   비유   마가복음 4장 30-32절『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말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들렀을 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자기 밭에 심은 자는 바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기 밭(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겨자 씨)를 심었다. 그래서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되었다. 이 공중의 나는 새들이 바로 베드로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새들이다. 바로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겨자씨(예수 그리스도)를 성도의 심령 속의 밭에 심어주신다. 겨자씨 비유에서 밭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하나님 나라)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서는 하나님 나라 대신 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천국은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서 심령 속의 성전(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 또  비유 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

다시 태어남의 의미

  ( 디도서 3 장 5 절 )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다시 중생 ( 팔린제네시아스 ) 의 씻음 ( 루트루 λουτρο ῦ ) 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루트루는 세례를 의미한다 . 물론 씻는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 여기에서는 세례가 적합하다 . 세례는 물에서 죽은 자라는 것이다 .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죽은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 베드로전서 3 장 21 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 』 에베소서 5 장 26 절에서도 『이는 곧 물로 씻어 ( 루트로 λουτρ ῷ )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 카다리아스 καθαρ ί σας ) 거룩하게 하시고 ( 하기아세 ) 』마태복음 10 장 8 절에서도 카다리아스는 등장하는데 , 나병환자를 정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이 정결의식은 더러움을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 더러움 ( 죄 ) 이 사라지는 개념이다 . 즉 죽는다 라는 것이다 . 로마서 6 장 7 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나병환자가 변하여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 나병환자는 죽고 , 깨끗한 사람이 태어나는 개념이다 . 부활도 마찬가지로 이전의 것은 사라지고 ( 죽고 ), 하늘로부터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 팔린제네시아스는 다시 태어남이다 . 그래서 중생의 씻음이라는 표현보다 , 다시 태어남의 세례라고 표현함이 좋을 것이다 . 즉 세례를 통해서 이전의 것이 죽고 ,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다시 번역해보면 ,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다시 태어남의 세례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요한복음...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창세기 4 장 13-15 절『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죄벌이라고 번역되었지만 , 죄악 , 불법이라는 의미다 . 내 죄악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 즉 내 스스로 죄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율법을 지키다가 죄를 깨닫고 도저히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부르짖는 것이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이 주어진다 . 은혜의 손길은 그리스도이시다 . 그에게 그리스도가 찾아가시는 것이다 . 가인은 모든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려고 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 그는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이며 , 나그네이며 ,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를 의미한다 .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흙인 육체에 들어와서 선악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인 것이다 . 그런데 ,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이와 같이 가인의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자들이며 , 결국 유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다 이와 같이 가인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다 .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도 자기 중심이다 . 그래서 날마다 자기가 회개한다 . 중요한 것은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회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러한 회개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가인이 만나는 자는 여전히 율법 속에 ...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못하는 제자들

 귀신들린 아이를 치료못하는 제자들 마가복음 9장 17-20절『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마가복음에는 귀신들린 아이라는 표현이지만, 마태복음은 17장 15-16절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라고 표현되었다.『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물에 넘어지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할 자를 의미하며, 불에 넘어지는 자는 옛사람(혼)에 대해서 불에 타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마가복음의 예로 귀신들린 자는 죄인으로서 흙에 갇혀 귀신의 지배 아래 있는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고쳐주었다. 제자들이『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물렀더니『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는 제자들이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된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성도의 믿음이다. 현실적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