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창세기 4장
13-15절『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죄벌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죄악, 불법이라는 의미다. 내 죄악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즉 내 스스로 죄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율법을 지키다가
죄를 깨닫고 도저히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부르짖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이 주어진다. 은혜의 손길은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 그리스도가 찾아가시는 것이다.
가인은 모든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려고 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그는 결국 하나님을 떠난 자이며, 나그네이며,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흙인 육체에 들어와서 선악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이와 같이 가인의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자들이며, 결국
유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다
이와 같이 가인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도 자기 중심이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가 회개한다. 중요한
것은 날마다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회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러한
회개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가인이
만나는 자는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자가 된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상대를 판단하고 징계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 사고를 가진 자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가인을 죽이는(하라그)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나카흐)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을 죽이려는 자는 율법 속에 있는 자이다. 하라그는 창세기 4장 8절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과 같은 동사이다. 사람에 의한 폭력적인 살인에 등장한다. 나카흐는 하나님에 의해서 치시는 죽임, 곧 심판을 의미한다. 개역개정을 볼 때는 가인이 죽임을 면하는 것을 여겨진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칠배의 벌)을 받지만, 가인을 만나 가인이 가지고 있는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면하게 된다는 말이다.
לְבִלְתִּ֥י הַכֹּות־אֹתֹ֖ו כָּל־מֹצְאֹֽו׃『레빌티(않도록) 하코트(죽임을) 오토(그가) 콜(~누구를) 모츠오(만나는)』
한글 개역개정에는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나카흐)을 면하게 하시니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바탕으로 다시 번역해 보면, 『그를
만나는 누구든지 죽임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그러나 그를 만나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죽임)을 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가인이 가지고 있는 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가인이 표(언약)을 가지고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살인자였지만, 돌이켜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가인에게 구원의 표(그리스도)를 주시고, 어떤
사람이 그 표를 가지고 있는 가인(회개하여 돌이킨)을 만나면
그도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오트는 증거 또는 언약의 표시를 의미한다. 구약시대 언약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창세기 9장 12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창세기 9장
14-15절에서『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출애굽기 3장 12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그러나 신약시대 언약은 포도주와 떡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6장 32-33절에서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오트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의 약속인 것이다.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십자가의 죽음과 연합)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떡(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주시는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부르짖지 않는 자에게는 오트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지 못하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가인을 죽이는 자는 가인의 방법으로 살인하는 자라는 의미다. 자기의 의에 빠져 있는 자이며, 마음 속에 하나님처럼되고 싶은 탐욕이 있는 자이다. 일곱은 언약 맹세라는 의미다. “일곱배 벌을 받는다”라는 말은 언약을 통해서 받는 저주(보복)를 담고 있다. 일곱은
완전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진노의 포도주라고 했는데, 진노는 하나님의 일하심(보복)이다.
가인을 통해서 가인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죽이면 생명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살인자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것이다.
가인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곧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이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자를 말한다. 육체가 살아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는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자는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은 육체의 죽음외에 심판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을 받은 것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백보좌 심판때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4장 23절『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레피츠이)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문자적으로 보면 라멕이 다투다가 작은 상처가 났는데, 그로 인해 사람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여자들에게 자랑하고
있다. 심지어 상대방이 어린 소년일지라도 죽여버리는 포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 의미를 보면 그렇지 않다.
레피츠이를 창상을 당한 것이라고 번역했는데, 타박상을
입히다 라는 것이다. 창상(타박상)을 당하여 상대를 죽인 것이 아니라, 그냥 타박상을 입혀 죽인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은 “나의 상함(채찍)을 인하여 사람(인자:에노쉬)을 죽였다” 라고 되어있는데, 번역은 소년을 죽였다 라고 번역했다. 채찍으로 인자(아들)를 죽였다는 것이다. 채찍으로 죽였다는 말은 잘난 아내들이
결국 자식을 죽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계속 아내들에게 말하고 있다. 아내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를 상징한다.
라멕의 이 말은 가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가인은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의 죄악이 너무 무겁다 라고 고백한다. 도무지 스스로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라멕은 가인보다 더 심하게 죄악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는 항상 아내를 통해서 우상덩어리만 보이고 그래서 결국 이러한 삶이 자신의 아들도 죽였다는 것이다.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고통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는데, 온갖 우상과 세상의 즐거움과 풍요 속에서 사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죽인 것과 같은 결과를 말한다. 가인이 아벨(그리스도)를 죽인 것처럼 라멕도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마귀의 자식으로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죄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없으면 모두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4장 24절『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키(일진대) 쉬보아타임(칠배) 유캄(벌이) 카인 웨레멕(레멕을 위하여) 쉬보임(칠십) 웨쉬브아(칠배로다)
일곱배 벌을 받는다 라는 말은 언약을 통해서 받는 저주(보복)를 담고 있다. 가인을
통해서 가인과 같은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죽이면 생명의 양식이 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살인자 가인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주어지는 것이다.
라멕도 이와 같이 간구하고 있다. 70은
7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수로서, 언약의 증표로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죄의 용서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벌이 칠배라고 하는데, 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원수갚는 것(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19절에서『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원수갚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던 자를 그리스도의 지배아래 있게 되는 것이 원수갚는 일이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대속하는 것이 원수 갚는 일이다.
칠배에서 배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고, 칠이다. 칠은 안식을 의미한다. 라멕을
위하여는 칠십칩배라고 했다. 배라는 말은 없고, 칠십칠이라는
말이다. 즉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모든 구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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