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구원받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에베소서 2장 8-9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율법 아래 있을 때에는 영적 어린아이처럼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과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친다. 그런데, 성령 아래 있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에베소서 4장 13-15절『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τὴν ἑνότητα τῆς πίστεως καὶ τῆς ἐπιγνώσεως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하나님 아들을 믿는 것(피스테오스 πίστεως) 과 아는 일(에피그노세오스 ἐπιγνώσεως)에 하나가 된다는 말은 번역이
잘못되었다. 하나님 아들의 믿음과 성부 하나님과의 친밀히 아는 것(히브리어
야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서로 하나님 아들의
믿음과 성부 하나님과의 앎(히브리어 야다)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크기에 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아들의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하나님 아들의 믿음은 구원사역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고 성부 하나님이 부활시키신다는 믿음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이 성부 하나님과의
앎(야다)를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온 세상 인류의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될 때,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람으로 이루어
나가게 된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성도가 회심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죄인이
회심하여 곧바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귀납법적이 아니라, 연역법적이다.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이 먼저 선언해주신다.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시민권을 갑자기 얻었다고 생각을 할 때, 그는
미국인이 되겠지만, 미국에서 삶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언어,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부족한 상태로서 완전한 미국인이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장애물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데, 장애물은 성도의 육적인 자아가 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갈라디아서 5장은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데, 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이를 바라보면서 장애물을 이겨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으로 난 자와 율법 아래 있는 자에 대해서 성경은 대비한다. 갈라디아서5장 19-21절에서『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그리고 5장 22-23절에서『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장 11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육신의 정욕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육신의 열정들이다. 육적인 자아는 대략 일곱가지로 나타낼 수 있는데,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경험과 지식,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에팡켈미타)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θείας κοινωνοὶ φύσεως)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에팡켈미타(ἐπαγγέλματα) 는 약속인데,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주시려는 약속이다. 『데이아스(신) 코이노노이(참여하다) 퓌세오스(본성) θείας κοινωνοὶ φύσεως 』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신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신의 성품은 마치 인격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신성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성도가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품은 변하는 모습이지만, 신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교회 목사들 중에는 신의
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연결해서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신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데, 그들은 신의 성품(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스푸덴)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스푸덴(σπουδὴν)는 열망으로서, 신성에 참여하는 열망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여덟가지 덕목이 등장하는데, 마치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믿음 안에 덕이 있고, 덕 안에
지식이 있고, 지식 안에 절제가 있으며, 절제 안에 인내가
있고, 인내 안에 경건이 있고, 경건 안에 형제 우애가 있으며, 형제 우애 안에 사랑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더하라』는 말이 영어성경(niv)에는 『노력하라:make every effort to add』는 말로 번역되었다. 물론
킹제임스 번역은 『주어진다(giving)』로 되어있으며, 헬라어
원문에는παρεισενέγκαντες(파레이세넨칸테스:적용하다) ἐπιχορηγήσατε(에피코레게사테:주다)』(여덟가지 덕목이) 주어지고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신성이 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서 덕(탁월함)이 생겨나고, 지식(하나님과의
하나되는 관계)을 통하여 은사를 받게되고, 그래서 사람이
교만해질 수 있다. 그것을 깨닫는 자는 절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휘포모네)로 연결된다.
휘포모네는 주님의 보좌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유세베이안: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형제사랑과 아가페 사랑이 이루어진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 역시 성도의 지침서가
된다. 이를 기억하고 보면서, 영적 성장을 이루어 나가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계속 성장해간다. 자기 육적인 정체성과 싸우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자라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듯이 그렇게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성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이루는 자가 되어,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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