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
로마서 10장 9절『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여기서『주로 시인한다』는 말은『예수가 주인이라』는 말씀이다.『예수가
주인이라』는 말은 말로 선언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믿음은 두 종류의 믿음이 있다. 첫째는 예수를 믿겠다는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고, 죽어서 천국간다는
비전을 가지는 그런 믿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런 믿음을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육적인 자아가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에 대하여 죄인은 맞는 것 같고 그래서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믿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한 것과 같이, 육적
고난이 다가오면 예수를 부인할 수 있는 믿음이다.
율법 아래 있는 믿음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그리고 율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율법 아래
있는 믿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그래서 물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만, 그 이상은 아닌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의 말씀은 물세례가 아니라 일반 세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런데, 로마서 6장 6-7절의 말씀은 물세례를 설명하고 있다.『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그래서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죄의 몸이 죽는 것을 설명한다. 로마서 6장 3-5절은 세례 즉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설명하는데, 죽는 것은 물세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세례도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물세례를 받고 불세례를 모르는 자는 여전히 율법 속에 있는 것이다. 성소의 마당에서 희생제사를
드린 자일 뿐인 것이다. 동물의 피가 죄인의 죄를 대신하였듯이, 예수의
피가 신자의 죄를 대속하였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도는 성소의 마당만 밟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하는 계시될 믿음이란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나는 자의 믿음이다. 이를 성령세례라고 하는데, 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세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예수님이 삼년 동안 하신 것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온 것이다. 불세례는
심판을 의미한다. 불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심판)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과 같이 그렇게
심판받을 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성령세례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
성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소의
마당에서 왔다갔다 하는 죄인과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죄를 대속하는 제사장이 있다. 물세례는 마당 뜰에서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는 자이지만, 불세례는 이전의 옷을 벗고 제사장의 옷으로 갈아입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이전의 옷은 태워져야 한다.
레위기 13장 4절에서 『피부(오르 בְּעֹ֣ור) 에 색점(바헤레트בַּהֶרֶת֩)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וְאִם־בַּהֶרֶת֩ לְבָנָ֨ה הִ֜וא בְּעֹ֣ור בְּשָׂרֹ֗ו וְעָמֹק֙ אֵין־מַרְאֶ֣הָ מִן־הָעֹ֔ור וּשְׂעָרָ֖ה לֹא־הָפַ֣ךְ לָבָ֑ן וְהִסְגִּ֧יר הַכֹּהֵ֛ן אֶת־הַנֶּ֖גַע שִׁבְעַ֥ת יָמִֽים׃
바헤레트(בַּהֶרֶת֩)는 피부의 밝은 점이다. 피부(오르
בְּעֹ֣ור) 라고 번역된 것은 가죽의 이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은 레위기 1장 6절에서『그는
또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것이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와 연계되어 있다. 가죽옷을 히브리어로 가죽(오르)의
옷(코트노트)이다. 개역개정에서
가죽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영어성경의 ski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러나 skin은 살도 된다. 즉 가죽이라는 오르는 레위기 1장 6절의 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옷은 번제물의 가죽에 해당된다.
가죽옷(살과 가죽)에서 가죽에 해당하는 오르는 벌거벗음을 면하다 라는 의미다. 벌거벗은
살은 육체이며, 영이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영이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옥에 갇힌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세상에 던져진 자들은 다
벌거벗은 자들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인간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었음을 면하기 위해 옷을 입히는 것이다.
『피부에
색점(바헤레트בַּהֶרֶת֩)이
희나』이 부분은 하나님이 입혀주신옷은 반드시 갈아입어야 할 옷이라는 것이다. 희다 라는 말은 변질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는 옷임을 나타낸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받은 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여인의
후손)에 대한 흔적이 들어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지금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살은 혼을 나타낸다. 혼에는 일곱가지의 육적인 모습이 있는데, 그 중에서 종교심(헬라어 사륵스)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부분 인간들은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찾고 있다.
자연숭배, 정령숭배, 우상숭배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으로 온갖 더렵혀진 종교심, 즉 가죽을 벗겨버리고
살을 각을 내어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참 신이신 여호와를 찾는 살로 옷을 다시 입히시는 것이다. 이전의 것(옛사람)은
불로 태우고 새로운 옷으로 입는다. 이게 구원받은 자의 옷이다.
이사야 64장 6절에서『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말한다.『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육적인 자아(혼)를 부인하는 것은 곧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불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혼은 육으로 비롯된 죽어야 할 생명이다. 그래서 불세례로 하나님의 심판(둘째 사망)을 미리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새사람으로 태어난다. 참고로 육적인 자아는 일곱가지의 형태로 나타내며,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경험과 지식,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불세례를 받은 성도가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곧 부활이다. 일반적으로 거듭남이라고 말을 하는데, 성경에는 거듭남이라는 용어가
없다. 요한복음 3장 5절을
헬라어로 보면, 『ἀπεκρίθη Ἰησοῦ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σοι, ἐὰν μή τις γεννηθῇ ἐξ ὕδατο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οὐ δύναται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휘다토스ὕδατος)과 성령(프뉴마토스πνεύματος)으로(엑스ἐξ) 나지(겐네데 γεννηθῇ)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개역개정) 겐네덴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나다 라는 말은 영어로
again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렇게 되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고, 그 죽은 육체가 언제가 부활한다는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번역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 전하는 목사들의 책임이다. 부활은 이전의 육적인 몸(옛혼)은
죽고, 새로운 영의 몸(새혼)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body)는 부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육체는 죽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성경(베드로전서 1장 9절)은 그래서 혼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여기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것은 헬라어로 보면 프슈케(혼)이다.
계시되는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받는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을 때 받는다. 제사장 임명식에서 제사장이 제사장 옷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이전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성령세례이다. 새로운 옷이 부활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 세례에 대해 말하는데, 죽고 부활하는 말을 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하나님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다는 것이다. 이는 육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과 관계되는 말이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함께 하므로 믿음도 하늘의 계시를 받은 믿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대부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쳤던 것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요한복음 20장 22-23절에서『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예수님이
부어주신 성령은 엄밀히 불세례에 해당된다. 제자들은 부활의 몸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죄의 몸(옛혼)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옛혼을 태워버리고 영의 몸(새혼)으로 갈아입는 순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즉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생명으로 만드신다.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난 뒤에 죄의 문제를 언급하셨다. 부활의 몸은 죄가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전하며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죄가 사해짐을 전하라는 말이다. 부활한 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법으로 인도받는 존재들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숨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숨을 불어넣으므로 혼의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퓌시)이 되니라』번역의 오류이다. 네피쉬는 생령이 아니라 혼이다. 첫사람의 혼은 죽어야 할 생명을 의미하지만, 예수님이 제자에게 숨을
불어 넣는 것은 새로운 혼 즉 부활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부활의 몸은 영생의 몸이다. 부활의 몸이 있어야 하늘의 성전이 심령 속에 세워지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보기에『저 사람들, 술 취했구만』라고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를 받아서『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새 술은 바로『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구원이 전달되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구한다.
성령세례도 물세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을 손을 통해서 주는 것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어떤 제자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다. 바울이
성령에 대해서 그들에게 물었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알고, 다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제자들은 왜 성령에 대해서 모르는가?
사도행전 19장 4-5절『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여기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주시는
세례를 성령세례라고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 19장 6-7절『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오순절 성령세례는 부활을 믿는 자에게, 즉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 임하는 성령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성령의 능력과 말씀(호 로고스)로 예수님이 그 성전(지성소)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들어오심을 믿는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종말 때 예수님이 언젠가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한다. 그리고
죽어서 육체가 부활할 것도 믿는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에게만 예수님이 심령 속의 성전으로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후에는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세상 모든 자에게 임하실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심판의 주로 재림하여 오시지만, 성령의 법에 있는 부활한 성도에게는 현재적으로 심령
속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 심령 속에서 천국 혼인잔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님이 성령으로 재림하여 들어올 때, 성도에게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게 계시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때
성도에게 임하는 성전을 천국(셋째하늘,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나라와 달리 천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은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므로
천국을 사람들에게 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불경스럽게 받아드리기 때문에, 마태가 복음서를 쓸 때 하늘나라(천국)라는 말로 사용했다는 목사들의 말을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믿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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