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가복음 14장 12-15절『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역을 앞두고 유월절 만찬을 가지는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가롯유다와 은밀한 거래를 추진하고 있었다.
14장 10절에서 유월절 만찬에 앞서 이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가롯유다는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런 만큼 예수님은 가롯 유대의 생각을 다 알고 있었으므로, 유월절 만찬 장소는 은밀하게 사전 준비된 것이다. 이는 마가복음
11장에서 나귀새끼를 타는 예수님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전 밖 베다니 주변은 수차례 다니셨고, 지리도 잘 알고 그 동네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터라 나귀새끼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월절 만찬장도 사전에 준비된 장소라는 것이다. 그
힌트가 물 한동이 지고 가는 여인이다. 큰 다락방은 오늘날 여관을 연상한다.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자면 물도 여러 번 길러 날랐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 둘은 은밀히 성내를 들어가 물을 깃고 지고 가는 여인과 접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약속한
대로 방의 예약을 확인하고 저녁 만찬에 필요한 유월절 어린양을 주문한 것이다. 이때는 제자들 중에 두명만
갔으므로 가롯유다는 빠져 있었고, 그래서 그 장소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마가복음 14장 17-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떡을 떼면서 이것은 나의 살이라고 말하고, 포도주 잔을 돌리면서 나의 피,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14장 27절에서는『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이 말은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8장 6-10절에서『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새언약은 예레미야가 말한 것을 인용한 말씀으로『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는 동안에도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우상은 그들 마음에 있는 것이다. 우상은 다름 아닌 옛사람(옛성전)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우상이다. 마음에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옛언약은 돌판(옛성전)에 새겨졌지만, 새언약은
마음판(새성전)에 새겨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9장 21절에서『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옛성전은 율법 아래 있지만, 새성전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한다.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은 장차 오실 메시야(새성전)를 바라보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출애굽기는 출애굽하여 첫해 쓰여졌지만, 신명기는 1장 3절에서
광야생활 40년에 쓰여진 것이다. 그때가 11월이었으므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약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모세를
제외하고 옛사람은 광야에서 다 죽은 상태였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에게 새성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호렙산에서 언약을 받았다. 그러나 모압 땅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았다.
신명기
30장 14절에서『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으로는 유대인들이『지킬 수 없는 것』이었으나, 이제
새사람인 너희들은『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여인의 후손인 메시아(새성전)로 인해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죄로 인해서 날마다 희생양을 죽여야 했던 일들을 통해서, 이 동물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임을 그들은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사를 통해서, 마음 속에 세워진 성전(메시야)를
생각하며,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0장 8절에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한다.『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사도바울이 전하는 믿음의 말씀은 심령 속에 세워지는 새성전,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메시야가 헬라어로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언약은 부활을 의미한다. 부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에 제자중 한명인 가롯유다가 개입한다. 예수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팔고, 다른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다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가버렸다. 베드로는
닭이 세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했다. 제자들의 이 모든 것은 옛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옛사람은 십자가와 함께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시고 훅 하고 불어넣어주셨다.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새언약을 체결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새성전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고 그곳에서 성도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옛성전은 반드시 파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연합하여 죽었음을 믿는 것이 곧 옛성전의 파괴이다. 마음에 새겨지는 새성전이 성도이며, 천국이며, 천년왕국인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새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재림인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