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대로 삽시다” 라고 하면, 신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정말
애매하고, 포괄적이며, 난해한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한 사람들에게 성경대로 사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목사들은 성경대로 살아가는가?
그 말을 들은 신도들은 아멘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는 대부분 그
말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거나 잊어버린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성경대로 사는 삶은 무엇인가 개선의 의미가 있는듯한데, 막연한 말로
들리므로 그 말에 대해서 긴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이 성경의 문자에 집착해서 성경에서 이런 말을
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헬라어로 이것을 레마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으면, 그것은 호 로고스가 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성도에게 역사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삽시다
라고 말한 자의 의도가 전자에 있다면, 그는 율법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후자에 있다면 복음(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라는 말로 받아 드릴 수 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 전자라고 여겨진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있는데, 그 말씀을 집약하면, 율법과 복음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이 된다.
성경대로 사는 삶이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면, 정말 성경대로 사는 삶이 되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남을 용서하고,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타인의 본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고 또 신도가 받아드린다면, 성경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타 종교도 이와
같이 행한다.
성경대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성도가 전해야 할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이 성경대로 사는 삶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 목사들은 부활에는 관심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으므로 언젠가 신도들도 죽고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부활은 죽은 후에 육체적 부활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살아 생전에 부활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육체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죽은 시신을 냉동해서 보관하여 언젠가 소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다.
부활과 소생은 엄연히 다르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여러 번 살리셨다.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렸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으며,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바울이나
베드로 역시 죽은 자를 일으킨 예도 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은 영생의 몸이 아니라, 흙에서 온 육체이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셨으므로 그것을 부활로 생각할지 모르나, 부활은 육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다.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16-18절에서는 씨를 비유하면서
씨는 땅에 떨어지면 죽지만,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있으므로 생명이 형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씨 속에는 떡잎 모양의 생명이 있다. 사람으로 말을 하자면, 영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에서 살리는 주체는 성령이고, 살리는 대상은 죽어있던 영이다. 그래서 씨 속의 생명은 영이나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이라는 형체를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영의 몸을 입으므로 부활이라는 영광체로 태어난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49-50절에서 썩을
몸은 하늘의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을 한다.『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영의 몸은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몸이며, 그리스도의 옷이며,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신령한 몸이다. 변신하고, 공간의 제약이 없으며, 영생하는 몸이다. 육의 몸이 변하여 영의 몸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새창조라고 한다. 부활은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보혈만 강조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활이 빠진
교회는 반쪽짜리 복음이 된다. 그래서 성경대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목사들이 성경 대로 살지 않으면서, 신도들에게 성경대로 살자고 말을
하는 격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와 죽은 후에 부활될 것이라고 믿는 자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천국)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현재가 아니라, 미래 어느날(종말)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따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여전히 신봉한다. 심지어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다. 마치 세분의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현재적 그리스도의 재림도 없으며, 심령 속의 천국도 없으며, 심령 속의 천년왕국도 없으며, 심령 속의 생명책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현재 승천한 것도 믿지 못할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3절의 말씀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육에서 영으로 바뀌었으며, 육의 정체성은 죽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보좌에도
있으며, 성도의 심령 속에도 계신다. 따라서 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보좌의 하나님 안에, 그리고 심령 속에도 있는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는 자들이 성경대로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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