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무화과 나무

 

마가복음 11 12-14절『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영광을 나타낼 때도 있고, 저주나 심판을 나타낼 때도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의 무화과나무로, 불순종하여 우상을 섬기면 심판의 무화과나무로 표현했다.

안식과 영광을 나타낼 때는 열왕기상 425절에서『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무화과 나무 아래 있다는 말은 안식을 얻는다 라는 표현이다. 심판을 나타낼 때는 시편 10533절에서는『그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그들의 지경에 있는 나무를 찍으셨도다』라는 표현이 있다.

요한복음 1 48-49절에서『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율법을 공부할 때, 회당에서 주로 하였지만, 회당이 없는 곳은 주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율법을 공부하는 목적은 자신들을 속박에서 구원하여 줄 메시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공부하였을 것이다. 특히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세상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주된 것이리라. 그래서 나다니엘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율법을 읽고 묵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나다니엘에게 말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정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다니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예수님이 말하자 말자,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는 것이다. 물론 빌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지만, 자신의 이런 상황과 연결되어 바로 이런 말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0-51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여기에서 인자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2812-13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사다리(인자) 위에서 사자(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말이다. 인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졌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예수님 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교회 사람들이 천사가 예수님의 수호 천사들인가 라는 생각을 가질지 모르지만, 이는 범죄한 천사들이 첫사람 아담이라는 육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고, 다시 마지막 아담이라는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육의 몸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몸, 영의 몸은 부활한 영화로운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32절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산자라는 말은 영생을 의미하는 부활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나다니엘에게 하시는 말씀은 결국 내가 메시야이고,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으로 흙에 갇혀 세상에서 인간이 되었는데, 육적인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하나, 나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나와 함께 죽으므로 대속의 죄값을 치르고, 영적인 너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부활하여 나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다니엘은 간절히 메시야를 찾던 중이라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의 제자가 된 것이다.

성경의 모든 핵심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이 아니면 성경 말씀이 아닌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만 말하거나, 부활만 말하는 것도 반쪽짜리 복음이 된다. 둘이 항상 붙어있어야 진정한 복음이 된다.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과거나 먼 미래로 받아들인다면 그 또한 하늘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는 자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과거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으며, 예수님의 부활은 열매맺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부활을 첫열매라고 말을 한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존재(그리스도)이므로 사람으로 표현한다. 역할을 달리 할 뿐이다. 첫사람 아담은 범죄한 천사들의 죄를 뒤집어 쓰고 흙에 갇혀,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죄의 몸을 전해주는 역할로, 마지막 아담은 범죄한 천사들이 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부활의 몸을 주기 위한 역할로 세상에 온 그리스도인 것이다. 부활을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다시 살아난다고 믿는 자는 마치 흙이 영생의 몸으로 변한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흙은 흙으로 돌아가고, 부활은 영생의 몸으로 새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1-25절에서『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파루시안)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파루시안을 강림이라고 반역하므로 마치 먼 미래에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파루시안 임재이다. 부활한 성도의 심령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들어가 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이를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 심판의 재림으로 등장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 천년왕국을 이룰 때, 왕노릇한다는 말이다.

무화과 나무가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현재적 부활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전도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도 핵심인 현재적 부활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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