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마가복음 10 32-35절에서『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세번째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고 두려워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통제하시며, 열두해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낫게 하시며, 죽은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고, 귀신을 쫒아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며, 바다 위를 걸으며, 병자를 낫게 하는 장면을 목격하였으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죽고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세번이나 하므로 제자들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언젠가 세상을 통치할 때 한 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가복음 9-10장의 내용을 근거로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맹인, 귀신들린 자, 우상숭배자, 어린아이, 이혼한 남자나 여자, 재물이 많은 부자, 혈육에 얽매여 있는 자 등으로 비유했다. 맹인은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자, 귀신들린 자는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자, 우상숭배자는 하나님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믿거나, 예수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 어린아이는 하늘 나라에서 누가 크냐 라는 생각을 가진 자,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천하를 호령할 때 자신이 그 분의 우편에 좌편에 앉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 이혼한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의미를 모르는 영적 간음자, 재물이 많은 부자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신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간다고 믿는 자, 혈육에 얽매여 있는 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는 자(육적 자아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자)로 볼 수 있다.

마가복음 1036-40절에서『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오늘날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 부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셔서 천년 왕국이 이루어질 때, 자신들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환란을 피해 휴거도 은근히 바라고, 자신이 살아 생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어서 부활하여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부활하면, 20대의 얼굴로 부활하겠지 라면서 말이다.

오늘날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활과 재림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다. 부활과 재림을 언젠가 이루어질 장래의 이야기로 받기 때문이다. 현재적 부활과 재림을 말하면 대부분 이단으로 생각한다.

신도들이 생각하는 부활에 대해서 한글 개역개정 성경은 두가지로 표현되었다. 살아나셨고 (헬라어 에게이로)부활(헬라어 아나스타시스, 또는 텐 에게르신)이다.

첫째, 살아나다라』는 표현은 헬라어 에게이로(영어로는 rise)로서, 마태복음에는 16 21, 286, 마가복음 166, 누가복음 247, 요한복음 219, 로마서 64, 디모데후서 28, 베드로전서 121절 등에서 나타난다. 살아나다 라는 헬라어 에게이로가 부활로 잘못 번역된 것이 있었다.

마태복음 2753절『예수의 부활(에게르신)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부활이라고 표현된 헬라어는 텐 에게르신 ν γερσιν)으로서 영어 성경에도 resurrection(niv,kjv)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에서 부활은 문법적으로 명사이다. 즉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에게르신은 일어나다 살아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에게르신(명사)과 에게이로(동사)는 같은 의미로서 한글개역 개정의 부활이라는 번역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부활보다 살아남(명사) 이라는 용어가 맞다. 이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예수의 살아나심(에게르신)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로 되어야 한다.

둘째,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영어로는 resurrection)로서 마태복음 2230, 요한복음 1125절에서 사용되었으며, 헬라어의 아나스타시스를 한글 개역개정에서,『살리다』라는 것으로 번역한 사례도 두건이나 있었다.

요한복음 640(한글 개역개정은 살린다 라는 표현으로 잘못 번역되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ναστσω) 하시니라』수정하면, 내가 이를 부활시키리라 하시니라』명사적인 용법의 아나스타시스의 동사 용법이다.

사도행전 2623 (한글 개역개정은 살아난다 라는 표현으로 잘못 번역되었다)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아나스타세오스 ναστσεως)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수정하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것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을 통한 첫 사람이 되사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보이시리라 하는 것이니이다 하니라. 다시 살아나사 라는 표현의 아나스타세오스(ναστσεως)는 영어 성경에는 to rise(niv), shoud rise(kjv)으로 표현되었다. 부활은 문법적으로 명사이다. 즉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 그런데, 한글 개역개정은 동사 용법으로 사용되었고 영어 성경도 동사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셋째, 이외에도 부활과 의미가 같은『하늘로부터 태어나다』라는 표현의 겐네데(γεννηθ)는 영어 성경에는 be born(niv, kjv)으로 표현되었다. 현재시제이다

요한복음 3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교회 사람들이 거듭난다 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바로 헬라어 겐네데 라는 말이다. 겐네데는 거듭나다 라는 말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난다는 표현이다. 이 말은 내용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표현에서 물은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죽고 하늘로부터 태어나므로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겐네데)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남(에게이로)은 의미상 같은 개념인 것이다.

베드로전서 13(한글 개역개정은 부활로 번역되었으나, 영어 성경은 일으키다:raise up으로 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아나겐네사스)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부활 이라는 표현의 아나스타세오스(ἀναστάσεως)는 영어 성경에는 raised(niv), was raised(kjv)으로 표현되었다. niv 는 동사 과거로, kjv 는 동사 과거 수동형으로 사용되었다.

아나겐네사스 (ἀναγεννήσας)는 거듭나게 하사(하늘로부터 태어나게 하사)이다. 부활하심을 통하여 거듭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말미암아는 헬라어 디(δι’)로서 ~을 통하여 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활을 거듭난 상태로 표현된 것이다.

베드로전서 123절『너희가 거듭난(아나게겐네메노이)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거듭난 이라는 표현의 아나게겐네메노이(ἀναγεγεννημένοι)는 영어 성경에는 have been born again(niv), being born again(kjv)으로 표현되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너희가 하늘로부터 태어난 것은 ……』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부활이라는 표현의 아나스타세오스, 아나스타신 등은 명사 용법으로서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는 것이다. 아나스타신이라는 헬라어를 부활하다 라고 번역하여 동사적으로 사용한다면 의미상 맞다.

죽은 자로부터 일어난다 또는 다시 살아난다 라는 표현(에게로, 에게르데나이 등)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로부터 살아난다는 의미로서 동사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말의 의미는 바로 하늘로부터 태어난다는 겐네데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다시 살아나다, 일어나다, 거듭나다 라는 표현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말 거듭나다 라는 표현은 하늘로부터 태어나다 라는 말이 정확한 번역이 된다.

결론적으로 부활하다, 죽은 자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개념이 아니라, 이전의 육적인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부터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잘 설명해 준 것이 로마서 6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현재적 부활과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서, 성도 역시 현재적으로 영적 부활한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부활한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들어오신다. 현재적 부활과 재림의 모습을 성경에서 표현한 것들이 여러 군데 있다. 그 중 세군데의 예를 보면

데살로니가전서 415-18절에서『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페릴레이포메노이)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자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역을 하다가 죽은 자를 의미한다. 페릴레이포메노이는 죽어있던 영을 살려 파루시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자들이다. 파루시안을 강림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파루시안(임재)은 주님을 통해서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파루시안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죽었던 자들이 영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로 가고, 그 다음에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4 15절에서 강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παρουσαν 임재) 416절의 강림인 카타베세타이(재림)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시에는 그리스도 이전의 믿음의 선진들이 먼저 일어나고, 다음에 부활한 성도들도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재림해 들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 되고 하나님 나라가 된다. 그래서 파루시안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카타베세타이이고,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파루시안)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코이메데소메다)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호 네크로이)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현재적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은 이전의 육적인 것(옛사람)은 죽고, 영의 몸(새사람)으로 변화되어,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파루시안(παρουσαν 임재)하게 된다. 영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변화라는 것은 육적 몸이 갑자기 영의 몸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육(옛사람)은 죽고, 영의 몸(새사람)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코이메데소메다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호 네크로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여기에서 죽은 자의 부활과 산자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로, 영적으로 산자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자 중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믿음의 선진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된다. 이 부활은 마지막 심판 때 일어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적 부활로 나타난다. 현재적 부활은 육적 몸이 죽고, 영적인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령 속에 부활된 영의 몸(성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해 들어오시는 것이다. 영의 몸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544-45절에서 언급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비록 성도가 현재적 부활과 재림을 믿는다 할지라도 살아있을 동안에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로 인해서 영의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성도 역시 육적으로 마지막 때를 만나면, 부모로부터 받은 육은 사라지고, 영의 몸으로 홀연히 변화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 바울은 신도들을 이 말로 위로와 격려했던 것이다.

베드로후서 310-12절에서,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후 우라노이)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파렐류손타이)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주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주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들어오는 날이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오신다. 왜냐하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늘로 부터나지 않으면(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난 자에게 들어오는 순간, 새창조가 일어난다.

『후 우라노이』는 심령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파렐류손타이는 파라(옆에서) 류손타이(오다)의 합성어다. 그래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이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번역했는데, 아마도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늘이 풀어지는 것은 잘못 번역된 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이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것은 육적 몸(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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