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인과 나사렛 예수

 

나실인과 나사렛 예수

 

사사기 131-5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민수기 65절에서, 어떤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나실인으로 지내려면 그 기간 동안 머리를 깍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금 일반인의 신분으로 되돌아 갔을 때에는 머리를 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는 일평생 동안 머리털을 밀 수 없었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영원한 나실인으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나실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지르(נְזִ֧יר)' '바치다, 거룩하게 하다, 구별하다'는 뜻의 동사 '나자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의미한다. 이 나실인에 대한 규례는 민수기 9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을 출발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나실인은 포도 나무에서 나는 것과 독주를 먹을 수 없으며,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하고, 시체를 가까이하여 자기의 몸을 더럽혀서도 안 되었다. 이러한 나실인의 규례는 구속사적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제사로 자신을 드린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마지막 사사인 삼손 이야기는 다윗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사사시대는 우상숭배와 그로 인한 이민족의 침략, 그리고 이스라엘의 울부짖음과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율부짖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드온 40년 동안만 평온했다고 말을 한다. 기드온 이후 아비멜렉과 입다를 거치면서 평화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이다. 사사기 131절에는 평화도 없는데, 하나님께 부르짖지도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그것을 평화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블레셋족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적 생활과 중계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다. 삼손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레셋 치하에서 삼손이 사사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0년 밖에 안 되며 삼손 이후에도 블레셋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그러나 사무엘의 통치 말엽 경에 블레셋의 압제가 일시 소강 상태를 이루었던 점으로 보아 이때까지의 기간을 대략40년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도 블레셋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다윗 왕이 저들을 정복하므로서 마침내 블레셋의 압제는 끝이 난다. 사사시대는 다윗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솔로몬 시대 이후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을 때, 북쪽을 관장하는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 하나는 단에다 두었다. 단은 우상의 성지라고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파에서 마노아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마노아는 노아를 연상한다. 그 의미는 안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노의 홍수의 원인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약속의 씨를 가진 자가 약속의 씨를 가지지 않은 자와 섞이는 영적 간음을 한 것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히 섬겼으므로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를 통해서 구원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안식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하다 라는 의미다.

마노아의 아내는 불임이었으나, 하나님이 태를 열어주셨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도 결혼 전이라 불임과 같은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하게 하셨다. 불임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상태를 나타낸다. 아들을 낳아야만 대를 이어간다. 그런데, 불임에서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다. 마노아의 아내에서 삼손과 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삼손은 빛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요한복음 11절에서, 예수님도 로마지배의 영적 암흑시대에 빛이 되신 것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믿음의 선진들에게 아들에 대한 수태고지는 마노아의 아내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사무엘의 모친 한나, 세례요한의 모친 엘리사벳, 그리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에게로 이어진다. 누가복음 131절에서『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오늘날 교회는 원래 임신할 수 없었던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야만 하나가 된다. 창세기 224절이나, 에베소서 531-32절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교회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여자)는 그리스도(남자)를 만나므로,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을 통해서 아들을 낳을 수 있다. 그게 복음이고 구원이 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아들을 낳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탄)이 여인의 출산을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성도가 제사장이 되어 성전에 들어가고, 그리스도 역시 재림하여 심령 속의 성전으로 들어오면 둘이 만나게 된다.

이사야 541절에서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여기의 답은 544-5절에서『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하나님은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가 영적 불임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불임상태를 스스로 벗어날 수 없듯이 아들 역시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처녀가 아들을 낳는 것은 영적 구원의 증표인 것이다. 이사야 714절에서『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나실인 (나지르נְזִ֧יר)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포도주를 마시면 안되고,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되고 시체를 접촉하면 안되는 규례였다. 포도주와 관련하여, 나지르는 포도나무와 관련이 있다. 어느 기간에는 포도나무에 가지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레위기 255절에서『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나지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포도주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시편10415절에서 말을 한다. 신명기 1426절에서도『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장막절에는 포도주를 마셔도 좋다는 말이다. 장막은 안식을 의미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장막에 거하고 포도주에 취했다는 말은 안식을 의미한다. 안식하는 자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지만, 안식하지 못하는 자는 포도주를 마시면 안되는 것이다. 성만찬 때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는 성도가 안식하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은 자가 성만찬에 참여하지만, 안식하지 못한 자는 성만찬에 참여하면 안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629절에서『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밤 성만찬에서 세번의 포도주를 마신 후에 네번째 포도주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제 유월절 포도주를 대신할 새 포도주를 마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런 장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실인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전의 포도주는 고난의 포도주이지만, 새 포도주는 기쁨의 포도주인 것이다. 잔치의 포도주인 것이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그 포도주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320절에서『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신랑을 빼앗길 때는 금식을 하라고 하셨지만, 신랑과 혼인잔치에 들어가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포도주는 안식의 표현이다. 안식하지 못한 자는 금식을 하지만, 안식한 자는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나실인이 되는 것은 안식이 없다는 표현이며, 이스라엘이 그렇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너희들은 영적으로 안식이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나지르(나실인)는 나자르(나사렛)와 거의 비슷한 발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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