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이 하나님께 간청한 두가지의 표적(양털과 타작마당)
기드온이 하나님께 간청한 두가지의 표적(양털과
타작마당)
사사기 6장 36-40.『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찾아왔다. 기드온이 대단한 인물이라서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용사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안의 사람들이 두려워서 숨어서 포도즙을 짜는 틀에서 타작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천사의 입을 통해서 기드온에게 반드시 내가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웠다. “하야 아세르 하야”(나는 나다:나만이 존재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반드시 전쟁에 이기는데,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이 기도온에게 표징을 하나 보여주셨다. 천사가 기드온이 대접한 음식을 먹는 대신에 불로 태운다. 즉 불로
응답하는 모습이다. 모세를 부를 때도 하나님이 불꽃가운데서 나타나신 것이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축할 때도 불이 임했다. 신약시대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이다.
기드온이 표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자 말자, 천사가 순간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평안)이라고 불렀다. 샬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기드온이 샬롬의 제단을 쌓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우상의 제단이
있었다. 그 제단은 바알과 아세라 목상이었다. 기드온이 이
우상들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기드온이 세운 제단에 칠년된 둘째 수소를 번제로 드렸다.
기드온의 아버지는 제단의 관리인이었다. 바알은 농사와 관련이 있고, 아세라는 자식이 잘되게 하는 다산의
신이었다. 즉 풍요를 기원하는 우상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예수와 십자가가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상을 겸히 섬기는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신도 역시 기드온처럼 이러한 우상을 마음으로부터 찍어버려야 한다. 첫째 수소는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찍어내야 하는 것이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것이다. 칠년된 둘째 수소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는 어린양의 죽음을 의미한다. 칠년은
완전함을 의미한다.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상을 찍어맸는데, 종들 중 하나가 고해 바친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이 이런 행위를
한 것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불렀다. 바알과 싸우는 자라는 의미다. 그의 아버지는 기드온을 변호했다.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기드온을 다음날 아침까지 바알이 죽일 것이다. 그러니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드온은 죽지 않았고, 백성들은
바알이 능력없는 우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시기 6장 33절에, 드디어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과의 전쟁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전쟁은 우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6장
34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는 것이다. 즉 영적 전쟁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성령)이 특별히 임하였을 때에는 명철과 지혜, 예언, 비상한 능력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는 성령이 함께 하신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므로서, 그가 침략한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움 받는다. 기드온이 나팔을 부니,
기드온을 죽이려고 한 자들이 모두 전쟁에 참여했다.
그런데, 기드온은 전쟁에 앞서 다시 한번 표적을 하나님깨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양털과 타작마당을 두고 표징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겠다는 것이다. 두번의
표적인데, 첫번째는 양털이 물(이슬)에 젖고, 타작마당 주변은 마르고,
두번째는 양털은 마르고 타작마당의 주변은 물(이슬)이
젖어있는 것이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대한 간구한 것은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에 대한 우상이다. 자연에 대한
순응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연을 뛰어 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을 자연의 순응과 질서를 통해서 바라보느냐, 아니면, 자연을
통제하고 뛰어 넘는 초월의 능력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을 바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헤서,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자연의 법칙,
질서를 통한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이를 넘어서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엘로힘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엘로힘은 모든 신을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직 여호와만
참 하나님인 것이다. “하야 아세르 하야” 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세상에 와서 마지막 사람 아담과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상에 살면서 풍요를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죄로부터 해방되는 그래서 이 세상에 영적으로 갇혀있다가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타작마당과 양털에서, 타작마당은
추수(세상)와 관계된다. 양털에서
양은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타작마당에 이슬이 내라는 것은 풍요의 신이 작동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털에 이슬이 내라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부활이라는 생명이 주어지며, 타작마당은 말라버리는 것이다. 세상과 영생은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달아라 라는 것이다. 양털에 이슬이 없을 때는 십자가의 죽음 만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이 죄 속에 있는 것이다. 타작마당에 이슬이 내려 세상의
풍요를 가져준다.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영적으로 죽어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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